어릴 적 축구선수가 꿈이었던 내게, 국가대표팀에 혜성처럼 등장한 홍명보는 우상이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꿈과 같았던 2002년 월드컵(이 대회를 모티브로 FIFA에서 제작된 게임에서는 한국선수로서 홍명보가 유일하게 최고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필살의 불꽃 패스 스킬까지...ㄷㄷ)에서 그의 선수 생활의 정점을 찍고는, 한국선수로서 완벽하다싶을 정도의 커리어를 완성했다. 내가 아는 한도내에서 그의 이미지는 최고였고, 깨끗하고 리더십있고 카리스마에... 마치 위인전에 올라가도 될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내가, 아니 대다수의 축구팬들이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시발점은 아시안 게임이었는데, 4강전 막판까지 끌다가 사용한 교체카드와 동시에 실점하여 패배했을 때였다. 패배 때문에 싫어하냐고? 물론 아니다. 그의 기가막히는 용병술 때문이었다. 체력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던 어린선수들로 구성된 팀에 연장전 승부로 늘어진 상황, 끝내 선택한 교체카드가 주전 골리인 김승규대신 이범영으로 교체하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공격적으로 나가서 골을 넣어 게임을 끝내겠다는 생각이 없어보였다. 나중에 이범영의 투입에 대한 이유를 들어보니, 김승규보다 승부차기에 강해서란다. 그렇게 이범영은 경기를 2분 소화해내고 결승골을 허용하였고, 팀은 패배했다.
우리 대표팀은 이전 8강에서도 연장 120분을 소화해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만약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지 않고 승부차기까지 갔었더라면, 이범영이 홍감독의 바람대로 눈부신 선방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에 올렸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었다면 언론과 여론의 반응은 '명장 홍명보, 다른 감독이라면 감히 흉내내지 못했을 신의 용병술'이라고 찬양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어쨋거나 공격수는 골로 말하고, 감독은 결과로 말한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매주 경기가 있는 클럽팀의 시즌제 리그와 같이, 오늘 졌으면 다음에 뒤집어야지, 패배를 다음 대회에 대한 밑거름으로 삼는 대회가 아니고, 4년에 한번씩 있는 대회다. 결과가 없으면 아무런 설명이 없는 냉정한 프로들의 세계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 토너먼트를 위해서 비싼돈을 주고 감독들을 영입하곤 한다.
아시안 게임은 과거로, 또 홍감독의 경험부재로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이번에는 월드컵이다. 세계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이란 말이다. 이영표 해설위원의 말대로 월드컵이란 경험을 쌓으러 오는 곳이 아니다. 그동안 쌓은 실력을 보여주고 뽐내러 오는 곳이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의 유임을 결정하였다. 역대최고의, 다시는 없을 최약체조에서 8강을 목표로 했던팀을 무기력한 경기력과 아마추어의 눈에도 보일정도의 전술적 실패로 1무 2패란 성적을 거둔 감독을 말이다. 반면 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아시아의 깡패같은 존재로 여기저기 다 패고 다니며 '이번에야 말로 원정 첫승'이라는 희망을 가졌던 차범근 호는, 당시 베르캄프를 필두로 세계최강의 선수진으로 구성되었던 네덜란드의 히딩크호에게 5:0으로 박살나고 대회 도중 경질당했었다. 물론 이전의 멕시코전에서 1:3으로 패배하기도 했다지만, 우리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선제골을 넣었던 경기였다. 그리고 보다 많은 시간을 10명으로 11명을 상대해야 했던 경기였다. 목표가 1승이었던 팀 감독은 대회도중 경질, 목표가 8강이었던 팀의 감독은 유임이라니, 참으로 일관성이 넘치는 축구협회다. 이것은 '고려대인들의 의리인 것인가'하는 생각만 깊어지게 만든다.
지난 몇년간 팀전체를 뜯어 고쳐, 새로운 팀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아주리군단의 예를 보자. 이번 대회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16강진출의 전망이 밝았었던 이 팀은 결국 탈락하였다. 그러나 '죽음의 조'에 배정되었고, 이번 대회 돌풍의 핵인 코스타리카의 예상치 못한 선전에도 있었다. 또, 남미 대회인 탓인지 상당수의 유럽팀들도 동료가 되어 함께 돌아갔다. 이탈리아라는 네임벨류에 맞지않게 이른 탈락임에도 불구하고, 팀의 입장에서 보면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 나라의 축구협회 회장은 책임을 통감하며 사임을 하였다. 우리나라의 축구협회 회장들은 철밥통인데 반해, 이 사람은 그러했다. 우리를 엿먹이며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고,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질식축구를 선보이며 경악케 만들었던 이란의 케이로스 감독도 사퇴하였다. 일본의 자케로니 감독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자진 사퇴를 하였다. 하지만 홍명보는 '기본적으로 남의 생각에 지배를 당하지않는다'라는 애매한 소리를 했고, 협회는 유임을 결정하였다.
이유는 홍감독에게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축구협회의 이빨과 행정에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이전에 감독을 제대로 구하지도 못했고, (아마)세계최초 월드컵 지역예선용 시한부 감독을 선임하기도 하고 말이다. 책임론은 아시안컵이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않단다. 대체 언제까지 기회를 줄 것인가? 어디까지 망가져봐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축구에 있어서 월드컵 이상의 무대가 있는가? 국가대표팀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는 월드컵과 그 다음순위로 대륙별컵이다, 우리에게는 아시안컵. 월드컵을 망친것도 모자라서 아시안컵까지 지켜보자는 것인가.
나는 감독을 갈아치우는 문제에 앞서서, 이 기가막힌 상황들을 연출시키는 축구협회 부터 싹다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아시안컵 예상 베스트 11을 공개한다.
GK - 정성룡
DF - 이용, 김영권, 홍정호, 윤석영
MF - 한국영, 기성용, 구자철 이청용
FW - 박주영, 손흥민
4-4-2나 4-2-3-1형태에 구자철에게 공격적 만능롤을 부여하는 복붙전술을 사용할 것으로 예산된다. 혹시나 괜찮은 결과를 거두면 또 홍명보는 살아나는 거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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